고하도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목재를 구할 수 있었다. 영암, 무안쪽 백성들 중에서 솜씨 있는 목수가 여럿 있었다. 군막 신축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날이 추워왔으므로 감독 군관들은 작업을 다그쳤다.
고하도로 수군 진영을 옮긴 뒤에도 내 숙사 방 안에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을 걸어놓았다. 그것이 내 운명의 지표인 것 같았다. 죽은 면이 꿈에 나타나는 밤이 계속되었다. 꿈에서 깨어나는 새벽에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등판이 구들장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밤 똑같은 꿈이었다.
어깨가 잘려나간 면의 몸이 개울창에서 일어섰다. 머리는 죽었는데, 몸은 살아 있었다. 죽은 머리가 산 몸 위에 붙어서 건들거렸다. 면은 칼이 없었다. 어깨 잘린 면의 몸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면이 말을 했는데, 잘려진 어깨의 단면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님, 저는 죽었습니다.)
면이 말할 때, 죽은 머리는 옆으로 꺾여져 있었다. 눈썹과 이마가 나를 닮아 있었다. 저것이 나로구나,라고 나는 꿈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면을 꾸짖었다.
(죽은 녀석이 너뿐이더냐? 내가 죽인 적이 헤아릴 수 없고 네가 죽인 적 또한 적지 않거늘, 네 어찌 내 꿈을 어지럽히느냐.)
(아버님, 저의 칼을 찾아주십시오.)
(칼을 어찌했느냐?)
(칼을 놓쳤습니다. 눈이 멀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물러가라. 무인이 칼을 놓쳤으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느냐.)
면은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려 울었다. 면은 잘려진 어깨로 울었고, 거기서 눈물이 흘렀다.
(아버님, 죽을 때 무서웠습니다. 칼을 찾아주십시오.)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말아라.)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말아라.)
면은 울면서 돌아섰다. 무릎걸음으로 면은 멀어져갔다. 면이 엉덩이를 밀어서 멀어져가는 쪽으로 노을이 붉었다. 노을 진 갈대숲 속으로 면이 기어들어갈 때 나는 면을 불렀다.
(면아, 면아.)
부르는 내 소리에 내가 가위눌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에 젖은 내 등판이 구들장에 결박되어 있었다. 담벽에 걸린 환도에 달빛이 비치었다. 땀이 마를 때까지 나는 한기에 몸을 떨며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나는 파도 소리 위에 떠 있었다.
부르는 내 소리에 내가 가위눌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에 젖은 내 등판이 구들장에 결박되어 있었다. 담벽에 걸린 환도에 달빛이 비치었다. 땀이 마를 때까지 나는 한기에 몸을 떨며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나는 파도 소리 위에 떠 있었다.
위병 근무를 교대하는 수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승주 조계산 속에 박아둔 승병장 처운이 적군 포로 17명을 생포해서 배에 싣고 왔다. 처운의 임무는 본래 정탐이었지만, 봉을 잘 쓰는 그는 때때로 적의 작은 무리들을 급습했다. 포로들은 순천으로 내려온 적의 육군들로, 조계산 남쪽 외곽 진지에 배치된 자들이었다. 20명 남짓한 병력이 위병을 세워놓고 진지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처운이 승병 5명으로 야습했다. 처운은 위병 2명의 입을 틀어막고 뒤에서 찔러 죽이고 잠든 적의 무기를 먼저 노획했다. 잠든 적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한 명씩 흔들어 깨워 묶었다. 저항하던 10명을 현장에서 베어서 소금에 절인 머리 10개를 가마니에 담아 왔다. 처운은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생포된 자들을 심문하지 못한 채 끌고 왔다.
포로들은 삼줄에 묶여져 내 숙사 앞마당에 한 줄로 꿇어앉았다. 스무 살 언저리쯤 되어 보이는 자들도 있었고 수염이 허연, 내 나이 또래들도 있었다. 잔등에 깃발을 하나씩 꽂았고, 조선 백성들의 솜바지에 짚신을 신은 자들도 있었다.
제주가 고향인 격군장 이만수를 불러왔다. 이만수는 조선말보다 일본말이 더 유창했다. 이만수의 아비는 제주 어부였는데, 처와 함께 먼바다로 나아갔다가 대마도에 표착했다. 이만수는 대마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이만수의 아비는 대마도에서 죽었다. 이만수는 임진년에 바다를 건너오는 가토의 군대에 징집되어 부산으로 들어왔다. 가토의 군대가 밀양으로 진공할 때 이만수는 탈영해서 조선 관군에 투항했다. 그가 근본이 제주이고 또 바다에 익숙했으므로, 관군은 이만수를 수군으로 보냈다. 나는 임진년 여름 한산 통제영에서 이만수를 받았다. 그때 이만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 후 열흘 도리로 닥치는 여러 전투에서 이만수는 노를 잡았다. 힘이 거칠 것이 없었고 온몸의 굴신이 좋아서 그의 노폭은 크고 힘찼다. 내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있을 때 이만수는 원균 밑에서 격군장으로 승진되었다.
나는 이만수에게 포로를 심문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일렀다. 이만수는 언문조차 쓰지 못했다. 종사관 김수철을 이만수에게 붙였다. 적의 외곽 진지에서 붙잡힌 하급 군졸들에게 고급 정보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적의 내륙에서의 이동 경로, 보급 및 훈련 상태, 적들에 대한 조선 관아들의 대응 태세를 집중적으로 심문하도록 종사관에게 지시했다. 포로들은 낮에는 산판 벌목 작업에 투입되었고 밤에는 심문을 받았다.
보고서는 열흘 뒤에 넘어왔다. 개인별 심문 조서였다. 붙잡힌 적들은 대개가 소속대를 이탈한 산병들이었다. 고니시의 부대가 순천으로 내려오면서, 고을마다 흩어져 있던 자들을 끌어모은 병력들이었다. 일본에서의 출신지나, 조선에 파병된 시점도 제가끔이었다. 나는 심문 내용 중에서 중요 정보 사항응ㄹ 요약해서 도원수부에 제출해야 했다. 보고서를 살피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심문 내용은 적의 수뇌부에까지는 접근하지 못했고, 전략 정보는 전혀 없었다.
……아베 준이치. 스물세 살.
하위 무사 계급으로, 파병 전 나고야 성의 위병 분초장. 정유년 여름에 섬진강 하구로 상륙. 이후 소속대와 함께 계속 북상. 금산성 공격 전투에 참가. 금산성 함락 직후 1계급 승진. 아산 작전에 참가. 아산 작전 후 원대에서 유리됨. 부여에서 고니시 부대에 합류해서 순천으로 내려옴. 아산 작전 때는 가토의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음. 생포된 자들 중 계급 서열 2위.
아산……, 아산…….
나는 종사관을 불렀다.
나는 종사관을 불렀다.
아베 준이치는 어디에 있느냐?
벌목 노역에 투입중일 것입니다.
벌목 노역에 투입중일 것입니다.
끌어오라. 이만수도 불러라.
군관 두 명이 아베를 묶어서 끌고 왔다. 군관이 아베의 정강이를 걷어차서 마당에 꿇렸다.이만수는 아베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아베가 고개를 들었다. 찌르는 눈빛이었다. 콧날이 가팔랐고 입술이 붉었다. 다부진 어깨가 직각으로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묻겠다. 이만수는 옮기라. 아산 작전이란 무엇이냐?
아베의 답변을 이만수가 통역했다.
내 주군의 특명에 따른 것이다.
아산의 한 산골 마을 주민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었다.
작전의 의도가 무엇이었나?
모른다. 우리는 주군의 깊은 뜻을 묻지 않는다.
모른다. 우리는 주군의 깊은 뜻을 묻지 않는다.
아산에서 교전이 있었나?
아산에는 조선 관군이 없었다. 마을을 불지르고, 조선 민병들과 싸웠다.
이면이라는 청년을 특히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나?
있었다. 다만 현지에서 이면을 식별할 수가 없었다.
개울을 사이에 놓고 싸웠나?
그렇다. 조선 민병들이 개울 건너에서 활을 쏘았다. 화약이 젖어서 조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우리는 칼을 빼들고 개울을 건너갔다.
그렇다. 조선 민병들이 개울 건너에서 활을 쏘았다. 화약이 젖어서 조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우리는 칼을 빼들고 개울을 건너갔다.
너는 몇 살이냐?
스물세 살이다.
나는 묻기를 멈추었다. 나는 아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봉두난발 아래로 눈이 크고 맑았다. 나는 아베의 목을 들여다보았다. 아베의 목은 굵고 짧았다. 목 뒤에 살이 쪄서 포개져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스물세 살이다.
나는 묻기를 멈추었다. 나는 아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봉두난발 아래로 눈이 크고 맑았다. 나는 아베의 목을 들여다보았다. 아베의 목은 굵고 짧았다. 목 뒤에 살이 쪄서 포개져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살기를 원하느냐?
무사를 희롱하지 말라.
(……아버님, 제 칼을 찾아주십시오. 눈이 멀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꿈속에서, 무릎걸음으로 멀어져가던 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면은 죽고 아베는 살아서 내 앞에 묶여 있었다. 면의 죽음과 아베의 죽음을 되물려서 바꿀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베의 팔뚝 위로 푸른 정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산 것의 힘이 느껴져왔다. 그 속으로 더운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었다. 어린 면의 아득한 젖내가 떠올랐다. 내가 맡아보지 못한 아베의 젖냄새도 떠올랐다.
살려주자, 살게 하자, 살아서 돌아가게 하자……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 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죽기를 원하느냐?
내 손으로 죽기를 원한다. 칼을 한번 빌려달라.
나는 군관에게 말했다.
끌어내다 베어라.
이만수가 아베의 겨드랑을 끼고 마당 밖으로 나갔다. 환도를 찬 군관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는 군관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다. 다시 끌어오너라.
아베는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무릎 꿇려졌다.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칼을 뺐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종사관 김수철이 내 팔을 잡았다.
나으리, 어찌 손수……
비켜라, 피 튄다.
나으리, 어찌 손수……
비켜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
저녁 무렵에 물결이 잠들었다. 먼 섬들이 노을 속에서 타올랐다. 저녁 해가 멀어져서, 저녁 바다에서는 늘 해지는 쪽의 먼 섬들이 빛났다. 종사관을 물리치고 혼자서 갯가로 나갔다. 종 강막수가 갯가의 움막으로 돌아와 파밭을 매고 있었다. 나는 강막수의 움막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강막수가 달려와 방문 밖에서 허리를 굽혔다.
나으리, 구들이 찰 터인데 군불이라도……
아니다, 가거라. 가서 일해라.
아니다, 가거라. 가서 일해라.
강막수는 밭으로 돌아갔다. 섬 너머로 지는 해의 노을이 방 안에까지 스몄다. 토담의 틈새에서 빈대들이 기어내려 왔다. 칼이 아베의 목을 지날 때 내 오른팔에 와 닿던 진동을 생각했다. 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눈물이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산 쪽에서 목재를 나르는 수졸들의 발맞추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관련글
2007/11/09 - 칼의 노래 중에서 장계를 올리는 장군님과 장군님의 죽음.
2007/11/09 - 칼의 노래 중에서 식은 땀
'읽을 거리 > 책이랑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에서 (0) | 2007/11/09 |
|---|---|
| 중국의 무서운 악습, 전족을 아십니까? (2) | 2007/11/09 |
| 칼의 노래 중에서 식은 땀 (0) | 2006/11/09 |
| 칼의 노래 중에서 면의 죽음. (0) | 2006/11/09 |
| 칼의 노래 중에서 장계를 올리는 장군님과 장군님의 죽음. (0) | 2006/11/09 |
| 자신있게 살아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말 (2) | 2006/11/07 |
|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 (8) | 2006/09/09 |




댓글을 달아 주세요